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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동남 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인도차이나, 미얀마 그리고 중국 남부지역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안선이 2.614Km에 달하고 동쪽으로는 태국만, 서쪽으로는 안다만(Andaman) 해를 끼고 있다. 총면적은 약 513,115평방 킬로미터로 프랑스와 비슷하며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한다. 국토의 28%가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41% 가량은 경작지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대략 6천 2백만명 정도로, 타이,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그 밖에 말레이, 라오스, 인디언, 그리고 버마인들이 그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공식어는 태국어지만 상업 영어도 통상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태국의 국교는 상좌부 불교 또는 남방불교(Theravada Buddhism) 로,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은 대단한 것으로알려져 있다. 

그밖에 남쪽 지역민들이 믿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힌두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초기의 태국지역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타이 Thai" 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제껏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태국은 국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태국의공식 국가상징물

 

태국을 상징하는 상징물에는 창타이(Chang Thai 태국 코끼리), 독 라차프륵(Dok Rachapruek), 살라타이(Sala Thai)가 있다.

창타이(Elephas masimus), 특히 흰코끼리는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대단히 큰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영광, 용기, 관용을 상징하는 이 고대의 동물은 장수와 신뢰의 동물로 간주된다.
코끼리들은 과거에 왕실권위의 상징으로 전쟁에서 왕실마차에 이용되었으며 흰 코끼리의 경우 태국 국기의 붉은 바탕에 보여지기도 하였다. 태국 코끼리들은 온순하며 영리하여 쉽게 조련이 가능하여 힘든 노동이나 작업이 가능하다. 주인이 말이나 몸짓으로 명령하는 것을 잘 따라하여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독 라차프륵(Dok Rachapruek, Cassia fistula Linn.)은 사배나주엽나무의 일종으로 20~45cm의 가지에서 노란색 꽃을 피운다. 4월에 개화를 하여 전국에서 이 꽃을 볼 수 있다. 불교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이 꽃은 태국 전역에서 발견되는 자연수로 강한 모양과 완벽한 형상으로 인해 성스러운 이미지로 여겨지고 있다. 줄기는 주요 의식에서 사용되며 꽃은 공무원 정복의 견장모양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살라타이(Sala Thai, 태국 파빌리온)은 태국장인의 혼을 보여주는 태국의 국가 건축양식의 일종이다. 태국 건축물을 독특하게 만드는 구조로 아유타야에 위치한 방파인 여름별궁의 프라 티낭 아이사완 티파야 아트(Phra Thinang Aisawan Thiphya-Art)는 국가공인 상징으로 지정되었다. 프라 티낭 아이사완 티파야 아트는 연못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개방된 구조에 지붕이 있는 파빌리온으로 태국스타일로 장식된 4개의 박공구조를 갖추고 있다. 출라롱콘 국왕(라마5세)의 지시로 방콕 그랜드팔래스의 아본피목쁘라삿(Abhornphimokprasart)을 본떠 건축하였으며 1876년 완공되었다. 현재 이건물에는 라마9세의 지시에 의해 군복을 착용한 출라롱콘 국왕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

 

 

 

기후와 날씨

 

태국은 세 개의 계절로 나뉜 열대기후 나라 입니다. 3월부터 5월까지는 덥고 건조한 날씨로 평균 기온은 34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매우 더운 계절입니다. 6월에서 10월까지는 평균 29도 정도의 날씨로 우기에 해당 합니다. 하루에 한 두 차례 소나기가 내리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화창하게 해가 비치는 날씨입니다.

 

 

 

세 계절 중 가장 시원한 11월에서 2월은 낮에는 32도까지 올라가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20도 정도까지 내려가 선선한 날씨를 즐길 수 있습니다. 북부지방은 다른 곳 보다 선선한 기후를 나타내며 11월부터 5월까지 가장 건조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특히 3월부터 5월에는 북동지역의 몬순기후가 북부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온의 날씨를 보이나 11월부터 2월까지는 신선한 날씨를 보입니다.

기타 5월부터 11월까지는 동서 몬순기후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강우량을 나타냅니다.

남부지방은 오직 두 개의 시즌으로 나뉩니다. 우기와 건기. 두 시즌은 반도의 동부와 서부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4월에서 10월까지 폭풍을 동반하는 몬순기후가 서부해안에 영향을 미치면 동부해안은 9월부타 12월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태국의 남부지방은 북부지방과 중부지방의 강우량 1,400mm보다 훨씬 많은 연평균 2,400mm의 강우량을 보입니다.

 

 

 

태국의 문화

 

태국에서의 불교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다. 태국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교와 불교의 역할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태국의 문화를 언급할 때 동남아시아 전체를 통한 태국 이주의 역사에서 그 행동양식을 참고한다. 태국 문화는 미얀마나 라오스, 베트남 오지의 태국 원주민 , 인도 등 인접 국가와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태국의 민족성은 조상이 같고 다름을 떠나서 태국 주류에 동화되어 있다. 태국이 현대적으로 사회가 변해 가더라도 문화적 삶은 일상생활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서구화되는 사회속에서 서구의 문물을 조화롭게 받아들여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고 있다.태국어에는 '문화'라는 단어가 없다. 근사한 단어로는 'WATANATHAM'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예술과 의식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태국의 역사

 

태국의 초기 거주자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태국의 북동지역에 있는 5,000년 전의 고대 유적지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쌀경작지와 청동유적이 발견되고 있고 이러한 부족들의 후손들이 고대 태국을 지배하였다. 이들은 몬_Mon과 크메르_크메르부족으로서 영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들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들과의 접촉을 통해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사상들은 태국의 문화적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중국 남서부에 거주하였던 태국민족은 몇세기동안에 거쳐 동남아시아로 이주를 하였으며 이지역에서의 그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캄보디아에 있는 크메르의 앙코르 왓사원의 12세기 기록에 나타난다. 이기록은 씨암 또는 "진황색"의 민족을 크메르왕족의 식민로 이들을 언급하고 있다. 1238년 태국의 부족장은 크메르로부터 그들의 독립을 선언하고 태국의 중부지방에 위치하는 짜오파야_CHAO PHRAYA, 매남_MAE NAM강의 넓은 계곡지대인 수코타이_SUKHOTHAI에 왕국을 건설하고 수코타이왕조는 14세기에 아유타야왕조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 후 버어마가 아유타야를 침략하고 1767년 수도가 함락되었으나 탁신_TAKSIN과 차크리_CHAKKRI라는 국가적 영웅이 나타나 침략군을 물리치고 차크리왕조를 세워 국가를 통합하였다.

몇 세기동안 태국의 정체성은 태국어와 종교, 왕조의 체계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며 태국인이 TAI, MON, 크메르 등 다양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대부분이 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태국어의 알파벳은 인도어와 크메르어에 기본을 두고 14세기 초에 발전되었다. 14세기 후반 RAMATHIBODI왕조에서 불교를 국교로 정했으며 불교는 이 후 국가의 사회, 문화, 정치 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와 불교신화에 바탕을 둔 태국왕조는 7세기가 넘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현재까지도 국민통합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세기, 유럽열강의 틈바구니속에서 유럽제국주의는 태국왕조에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강의 침략을 받지 않은 태국의 가장 큰 요인은 버어마, 말레이시아, 인도차이나를 양분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완충지대로서의 태국을 필요로 한 양국의 타협의 결과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태국왕조가 유럽의 열강들과의 다각적인 교섭을 통해 유럽스타일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개혁들이 국가발전과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주권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태국(시암)은 이러한 독립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뤘으며 프랑스에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대한 종주권을 내줬으며 영국에 말레이반도의 북쪽지역을 양보해야만 했다.

20세기 초 태국의 정치제도, 군대, 학교, 경제는 급속한 변혁을 경험한다. 수많은 태국인들이 해외에 유학하고 소수의 서구화된 엘리트들이 등장하게 된다.1932년 군인들과 민간인들에 의한 쿠테타는 절대왕조를 몰락시키고 태국의 입헌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안정적, 민주적 정치제도에의 발전은 상이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정치권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군벌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러한 군벌들은 반복적인 쿠테타를 감행하고 오랜기간동안 군계엄령을 공표하게 되었다. 1932년과 1987년에 태국의 열네 번째 헌법에 의해 제정된 국회과 민간 정치인간의 정쟁은 군사정부를 위한 일종의 꼭두각시역할을 수행했다.

 

 

<출처-태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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